일성정시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는 1437년 5월 19일(조선 세종 19년 음력 4월 15일)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세종이 이천, 정인지, 정초에게 명하여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각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들게 하여 장영실 등이 만든 주야간 시계이다.
개요
[편집]세종은 이미 3년 전인 1434년에 물시계인 자격루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었지만, 이동이 불가능하고 기기가 복잡하고 설치비가 많이 드는 자격루와 밤에는 측정을 하지 못하는 앙부일구의 단점을 보완하여 이동이 가능하며, 밤낮으로 측정할 수 있는 시계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이천과 정인지 등에 명하여 만든 것이 일성정시의이다.
일성정시의는 모두 네 개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구름과 5개의 발톱을 가진 용을 장식하여 궁궐 내 만춘전 동쪽에 두고, 나머지 세 개는 바퀴를 달아 이동식으로 만들었는데, 하나는 기후를 예측하는 서원관에 배치를 하여, 나머지 두 개는 함길도와 평안도로 배치를 하여 사용하게 하였다. 틀은 구리로 만들었고, 바퀴를 달아 이동이 가능하게 하였다.[1]
원리
[편집]이는 태양시와 항성시를 측정하는 주야 겸용의 측시기로 해시계의 원리와 항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규칙적으로 돈다는 별시계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 구조는 십자거에 세 개의 환이 있는데,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라고 하며, 한양의 북극고도(위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시간
[편집]주천환(周天丸)에 주천도(周天度)를 새기고 매도는 4분으로 하며, 일구환(日晷環)은 100각을 새기되, 매각을 6분으로 하였다. 성구환(星晷環)도 일구환과 같이 새겼으나, 자정이 신전자정에 지나서 하늘이 일주하는데, 1도를 더 지나간다. 하루에 1도, 이틀에 2도, 사흘에 3도로 하여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가 되고, 다음해 동지 첫날 자정에는 3백 65도가 되니, 하루에 공도(空度)가 3분이고, 이틀에 1도 3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3분이 된다.
유적
[편집]비록 흐린 날이나, 눈, 비가 오는 악천후 등에는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의 표준 시간을 지키려는 세종의 의지는 누구보다도 강력했다. 세종 때에는 모두 4개의 일성정시의가 만들어졌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될 때 함께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복원한 것이 여주 세종대왕릉인 영릉에 있다.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각주
[편집]- ↑ “세종실록 77권 19권”. 조선왕조실록. 1437년 4월 15일. 2008년 12월 3일에 확인함.
원리, 시간 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