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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감은 트럼프, 믿지는 말라”
예전만 못하다 해도 여전히 ‘선거 족집게’로 명성이 높은 네이트 실버의 ‘촉’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초박빙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미 대선 향방이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실버가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내 직감은 트럼프”라고 밝혔다. 그런데 단서를 하나 달았다. “하지만 나는 물론 누구의 직감도 믿지 말라.”실버는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맞붙었던 2008년 미 대선에서 50개 주 중 49개 주의 결과를 정확히 맞히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어쩌다 얻어걸린 우연은 아니었다. 2012년 대선 때도 오바마의 승리는 물론 50개 주의 모든 결과를 맞혀 ‘예측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하지만 표심은 숫자가 아니고, 예측은 예언이 아니다. 그의 분석은 2016년 대선에서 크게 빗나갔다. 71%의 확률로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점쳤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였다. 다른 전문가들의 확률(85~99%)보다 조금 낮았다는 것이 그로선... -
‘사회학과 장례식’
“사회학자들은 이 세계들의 기능장애를 분석하고 그 갈등을 보여줘야 한다. 사회학자들은 개인이나 집단에 소크라테스적 산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1993년 12월7일 프랑스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국립과학연구원(CNRS) 금메달을 받는 자리에서 희망적인 수상 연설을 했다.이 연설은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2013년 <한국사회학>에 실어 국내에 알려졌다. 30여년 전 연설이지만 지금 들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 달리, 언제부터인지 사회학을 비롯해 인문사회계열 학과들은 고사 직전에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취업을 생각하면, 부모들부터 이쪽 전공을 말리는 일도 적지 않다.올 것이 온 것인가. 대구대에서 사회학과 폐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대구대 사회학과는 다음달 7~8일 ‘사회학과 장례식’을 연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해준 사회학과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형식의 학술제다. 강의 개설 4... -
“만약 사실이라면…”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북한 특수부대 러·우크라 전쟁 참전 확인’ 보도자료를 낸 뒤 국가안보실·외교부·국방부가 분주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여당 대표 회동에 이목이 쏠린 와중에 나토 사무총장 통화, 영국 외교장관 면담을 갖고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같은 말을 쏟아냈다. 외교부 차관은 주한 러시아대사를 초치해 “가장 강한 언어로 규탄한다”고 했고,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까지 단계적 지원’ 입장을 냈다.반면 미국처럼 이번 전쟁에 깊이 개입해온 국가는 ‘북한군 파병설’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 국방장관에 이어 백악관 관계자는 21일 “만약 사실이라면 위험하고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 전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이 위성사진까지 공개한 지 나흘이 지났는데 미국은 왜 한사코 “만약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일까. 그간 미국이 북한의 러시아 무기 지원 정보를 공개하며 한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 -
쓰레기 오비추어리
“오호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1832년 ‘유씨 부인’이 쓴 ‘조침문(弔針文)’의 일부이다. 오랫동안 쓴 바늘이 부러지자 안타까움을 담은 글이다. 바늘 하나를 이렇게 아꼈을진대 그 바늘로 고쳐입은 옷들은 어땠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경향신문이 창간 78주년을 맞아 ‘쓰레기 오비추어리’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우리가 옷을 얼마나 많이 사고 버리는지 주목해 대량 생산·소비 시대를 성찰한 보도이다. 누구나 짐작은 했지만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현장 르포와 수치로 드러냈다. 해외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한 초저가 물품 구매가 쉬워지면서 더 빨라진 의류 생산·소비·폐기 속도는 물자 이동 규모를 키우고 탄소 배출을 늘린다. 일단 많이 산 뒤 단기간에 쓰레기로 내놓는 소비 양태가 많아졌다. 일부 옷들은 가격표가 붙은 채 버려진다.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재고를... -
‘완전한 승리’의 덫
하마스 수장인 야히야 신와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늘은 전 세계에 좋은 날”이라고 밝혔다. 가자지구 주민인 모하메드도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모하메드의 의견이 일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휴전에 대한 기대감이었다.신와르는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인 1200여명을 학살하고 수백명을 인질로 끌고 간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 설계자다. 이스라엘 사살 목표 1순위였던 그의 죽음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낼 명분이 될 것이라고, 전 세계가 기대했다.희망은 빠르게 식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신와르의 죽음을 알리는 연설에서 “우리의 과제는 끝나지 않았다”면서 “이것은 끝을 향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즐겨 쓰는 용어인 ‘완전한 승리’를 위해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제 이스라엘군은 신와르의 죽음 후 가자지구와 레바논을 향한 공격 강도를 높이고 있다.네타냐후는 그가 강조하는... -
진보 교육감
교육감과 교육부 장관은 선출직과 임명직이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장관은 당장 내일이라도 대통령이 경질할 수 있지만, 교육감은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다. 직급은 장관이 높아도 권한과 역할은 교육감이 결코 밀리지 않는다. 교육 백년대계 얼개를 짜는 일은 장관 몫이지만, 학생과 학부모 피부에 닿는 정책은 교육감이 대부분 입안하고 집행한다.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정근식 후보가 당선돼 17일 공식 취임했다. 정 신임 교육감은 50.24% 지지를 얻어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조희연 전 교육감 득표율(38.10%)을 앞질렀다. 정 교육감 취임으로 2014년 이후 4번 연속 진보 교육감이 수도 서울의 초·중등 교육을 이끌게 됐다.정 교육감은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주호 교육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과는 정치 성향과 교육 철학이 다르다. 정 교육감은 무상급식·혁신학교·학생인권조례 등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으로부터 시작된 진보 교육의 핵심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다. 현 정권... -
한강 책 100만부 돌파
54세 한강 작가가 올해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리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한때 고은 시인 집 앞에서 수상자 발표날마다 취재진이 북새통을 이뤘던 걸 떠올리면, 머쓱하기도 하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나영이 이민 가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노벨상을 못 타잖아”라고 했던가. 그 아픔을 일거에 씻어준 게 한 작가의 엄청난 수상 소식이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한 나라라는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던 우리의 오랜 숙원이 풀린 셈이다.책방에선 한 작가의 책이 동났다. 출판사들은 밤새워 책을 찍어내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노벨상 수상 발표 후 엿새 만에 주요 작품이 10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20~30대를 중심으로 독서하는 모습을 멋있게 여기는 ‘텍스트 힙’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한 작가가 책방지기인 독립서점도 관심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작은 책방이 그렇듯 이곳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 그럼에도 운영하는 이유에 대...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국가 간 부의 차이를 연구해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다론 아제모을루·사이먼 존슨 교수, 시카고대 제임스 로빈슨 교수 3인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국가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정치·경제 등 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자유무역을 번영의 열쇠로 설명했다면, 이들은 제도가 부를 창출한다고 본다.아제모을루와 로빈슨 두 교수는 국내에선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의 결론은 간명하다. 국가의 성패는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포용적 제도’란 사유재산 보장과 법치주의, 민주주의, 공정한 장을 제공함을 말한다. 반대로 국가 실패의 뿌리에는 지배계층만을 위한 ‘착취적 제도’가 있다고 했다.이 책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인생 책’으로 꼽기도 했다. 당시 “분배가 공정하지 않은 사회는 지... -
‘전쟁인데 무슨 잔치?’
2017년 10월5일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군사 행동 가능성을 시사하는 ‘폭풍 전의 고요’를 언급했다. 그해 초부터 예열된 한반도 전쟁 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았다. 사흘 뒤 뉴욕타임스에 소설가 한강의 기고문이 실렸다. 한강은 ‘미국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글에서 “갈수록 악화되는 말의 전쟁이 실제 전쟁이 될까 두렵다”고 했다. 그는 “누구도 한반도에서 또 다른 대리전이 일어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며 “승리로 귀결되는 어떠한 전쟁 시나리오도 없다”고 했다.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는 미국 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한강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담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면서 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내전,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 등을 조사했다고 한다. 한강은 “국적·인종·종교·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로 여길 때 참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지... -
‘정의로운 전환’과 실업
영국의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인 잉글랜드 노팅엄셔의 랫클리프온소어 발전소가 지난달 30일 문을 닫았다. 1882년 세계 최초로 석탄발전소를 건설한 영국에서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먼저 석탄 발전을 포기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2036년까지 전국의 석탄화력발전소 58기 가운데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키로 했다. 내년 충남 태안 1·2호기를 시작으로 석탄발전소가 줄지어 폐쇄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발전소 노동자들이다. 지역경제 타격도 불가피하다.이를 막자는 것이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다. 기후위기를 막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지역을 지원하고,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정의로운’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미국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가 고안했다. 그는 1970~1980년대 독성물질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으려는 정부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위한 ‘슈퍼기금’을 제안했다. 이 개념이 확대돼 2015년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